편서풍에 실려온 중국 핵발전 공포 | date. 2012.08.29 | view. 51,342 |
편서풍에 실려온 중국 핵발전 공포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내에서 “편서풍 논란”이 일었다. 한국은 편서풍 지대라서 동쪽에 위치한 일본에서 방사능 물질이 방출된다 해도 한반도에는 유입되지 않으리라는 주장과 풍향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방사능 물질이 몰려올 수도 있다는 주장이 맞섰다. 결국 원전사고 10여 일 후 캄차카반도와 시베리아를 거쳐 방사능 물질 제논이 한반도에 유입된 사실이 확인됐다.
양측의 주장과 달리 ‘전혀 다른 경로’로 방사능 물질이 들어왔지만, 한국은 편서풍 지대라서 안심해도 된다는 정부의 설명은 사실과 달랐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당시만 해도 우리 국민은 원전사고의 위협을 체감하지 못했고, 수천㎞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사고였기 때문에 불안감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바로 이웃한 일본에서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과 불안감이 더 컸다.
중국 동해안에 원전 건설 집중돼
사실 더 혼란스러운 상황은 한반도의 서쪽에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은 엄청난 수의 원자력발전소를 새로 건설 중이거나 건설계획을 세웠다. 앞서 말한 편서풍 이야기를 감안할 때 중국에서 핵사고가 일어난다면 생각하기에도 아찔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한국에 집중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핵발전소는 대량의 냉각수가 필요해 보통 바닷가에 세운다. 따라서 우리와 인접한 중국 동해안에 엄청난 수의 핵발전소가 들어선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중국은 핵폭탄과 수소폭탄을 보유하는 등 핵무기 분야에서 앞섰지만, 상업용 핵발전소 분야에선 그렇지 못하다. 중국은 1991년 친산 1호기 가동을 시작으로 현재 13기의 핵발전소를 가동 중이다. 하지만 현재 27기를 새로 건설 중이어서 세계 1위의 핵발전소 건설국가로 꼽힌다. 신규 핵발전소 건설 2, 3위를 달리는 러시아와 한국이 각각 11기와 5기를 건설 중인 사실을 감안할 때 중국은 경쟁자 없는 세계 최고의 핵발전소 건설국가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풍력발전기 누적 설비용량 1위를 차지했고, 태양전지 생산부문에서도 세계 1, 2위 업체가 모두 중국 업체일 정도로 급격한 공업화에 따라 다양한 에너지원 개발을 서두른다. 석유 고갈이나 고유가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핵발전소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 최근 공개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동아시아 장거리 대기확산 모델의 연구개발 선행연구’에 따르면, 중국 중서부지역인 인촨(銀川)에서 핵사고가 발생해 12시간 동안 요오드-131이 대기 중에 방출될 경우 편서풍의 영향으로 3일이면 우리나라 서해안에 도달한다. 이후 요오드-131은 4일 낮 12시부터는 제주도를 포함한 한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6일 이후엔 일본 홋카이도까지 넓은 형태의 방사능 지대가 형성된다고 조사됐다.
중국 중서부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근접한 산둥반도에도 핵발전소 건설이 진행 중이어서 중국 동해안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하면 3일보다 더 이른 시간에 한국에 방사능 물질이 도착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방사능 물질이 한반도로 건너오더라도 이를 막을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매년 봄 중국에서 건너오는 황사에서 경험했듯이 거대한 편서풍의 영향으로 날아오는 방사능 물질이 한반도를 완전히 벗어날 때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
홍 의원이 밝힌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황사를 살펴본 결과 최장 잔류기간은 86시간10분, 최단 잔류기간은 5시간 55분으로 관측됐다. 외부로부터 방사능 물질이 유입됐다고 가정할 경우 최소 6시간에서 최대 86시간 동안 한국에 머물게 된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방사능 누출 시의 수치일 뿐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사고 발생 20일이 지나도록 수습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다. 중국에서 핵사고가 발생하면 한국은 속수무책이라는 얘기다.
베일 속에 가려진 중국의 핵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중국 정부가 핵사고에 투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핵문제에서 정부의 투명성 문제는 어느 나라나 논란을 낳는다. 기술자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핵산업계의 폐쇄성 탓에 일반 국민은 진실에 접근하기가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경단체와 시민사회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핵산업의 진실이 하나둘씩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중국에는 이러한 환경단체와 시민단체가 거의 없다. 다시 말해 견제세력이 없는 핵산업계는 사건을 은폐·축소하기 쉽다.
2010년 광둥성 선전의 다야완 2호기에서 일어난 냉각수 유출사고 때도 그랬다. 홍콩에 전력을 공급하는 다야완 2호기는 5월 23일 핵연료봉 문제로 방사능 물질이 냉각수로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발전소를 운영하는 홍콩중톈(CLP)과 홍콩 정부가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이 그 사고의 내역과 함께 방사능물질이 외부로 유출되었다고 보도하고 나서야 홍콩중뎬은 부랴부랴 “경미한 사고가 있었지만 냉각수가 완전히 밀폐돼 발전소 가동과 주민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비슷한 일이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때도 벌어졌다. 지진으로 군용·민간용 핵시설이 손상을 입었을지 모른다는 국제 사회의 지적에 중국 정부는 “방사능 물질 32개가 매몰되었으나 30개는 회수됐고, 두 개는 위치를 파악해 옮기게 될 것”이란 답변만 내놓았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물질이 얼마나 어떻게 있는지조차 언급하지 않았고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됐다.
하지만 당시 규모 7.9에 이르는 강진이 있었고, 진앙지 반경 100㎞ 내에 핵연료와 연구 시설이 있었으리라 추정되기 때문에 피해가 없다는 중국 정부의 입장에 많은 전문가가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중국 핵·방사능 안전센터는 지진 발생 다음날 모든 직원에게 핵사고에 대비하는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지진 피해가 컸던 지역에 핵무기 설계본부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의 상업용 핵발전소 사고의 피해 내역을 우리가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중국 정부는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았고, 내부의 민주주의 요구도 강경진압만 해왔기에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환경단체나 시민단체가 존재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다른 나라가 감시하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한국은 외국에서 유입되는 방사능 물질에 어떻게 대처할까?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혼선을 빚는 모습에서 보듯 정부가 미리 구체적 대책을 마련해두었다는 정황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방사능 재난 대비는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에 명시돼 있다. 이 법은 풍수해 등 일반적인 재난과 달리 전문적인 대처가 필요한 방사능 방재의 특성을 고려해 2004년 2월 시행됐다. 그러나 이 법에도 외국에서 들어오는 방사능 물질을 어떻게 대비해야 한다는 방법은 없다.
이 법은 설립 목적에서 “핵물질과 원자력시설을 안전하게 관리·운영하기 위한 방사능재난 예방 및 물리적 방호체제”의 수립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을 명시했고 주요 내용에서도 “핵물질 및 원자력 시설의 물리적 방호”는 규정해놓았지만 해외 방사능 물질 유입에 따른 규정은 없다. 그러다 보니 방사능 재난 관리에 필수적인 방사선 비상의 종류도 핵발전소와 연구소 등 관련 시설의 사고에 준해 설정해 놓았을 뿐이다.
방사능 재난에 따른 주민 보호조치의 기준도 핵시설 사고에 준해 방사능의 유효선량이 10mSv 이상일 때 대피, 50mSv일 때 소개 등 매우 대략적인 내용만 잡혀 있다. 이번 사고를 통해 널리 알려졌듯이 1인당 연간 피폭한계가 1mSv 임으로 고려할 때 매우 높은 방사능 누출사고일 때만 기준이 마련돼 있을 뿐 낮은 준위의 방사능 물질 유입 시 대비책은 세워두지도 않았다.
이러한 대비책 미비는 얼마 전 제논(Xe) 발견 사태에서도 잘 드러났다. 지난 3월 27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강원도 동부전선에서 23일 제논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최초 시료 채취 이후 4일이나 지난 뒤에야 해당 사실이 발표됐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제논 검지기가 국내에서 강원도에만 설치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마저도 일상적인 방사능 검출 시설이 아니라 북한의 핵실험을 감시하려고 설치한 장비였다.
국내 사고에만 맞춰진 방사능 방재 대책
그 후로도 정부의 미흡한 대처는 속속 드러났다. 3월 28일부터 서울 등 전국에서 요오드와 세슘이 발견되기 시작했지만 이와 함께 그간 1주일에 한 번씩 시행하던 핵종검사를 제논 발생 이후에야 매일 시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주를 넘긴 시점에서야 방사능 검사를 1주일에 한 차례씩 실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정부의 안이한 시각이 드러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들여다보지 못한 많은 사실을 깨닫게 했다. “항상 안전하다”고 강조해 온 정부와 핵산업계의 주장이 잘못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핵사고에 한국이 무방비 상태며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특히 한·중·일 3국은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핵발전소의 20%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건설 중인 핵발전소의 52%가 몰린 대표적인 핵발전 선호국이다. 더구나 중국은 상업용 핵발전소를 운영해 본 경험이 짧고 폐쇄적인 사회구조 탓에 사고 발생 위험과 발생 후 상황을 들여다보기 힘든 최악의 원전 시스템을 가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에서 핵사고가 벌어진다면 현재 우리가 겪는 불안감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커다란 혼란이 생길 게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더구나 한·중·일 3국이 모두 정책적으로 핵발전을 선호해 왔기 때문에 우리가 중국을 향해 핵발전소를 폐쇄하라고 주장할 자격도 없다. 국외 방사능 재해에 대비한 대비책과 함께 한·중·일 3국이 모두 탈핵 에너지 정책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세 나라가 정책 보조를 맞추지 않을 경우 또다시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에 서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시를 잘하고, 대비책을 잘 세운다 할지라도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방사능물질을 막을 길은 없다. 더구나 핵무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핵발전은 평화로운 에너지도 아니며, 후세에는 수만 년씩 보관해야 할 핵폐기물만 넘겨준다는 점에서 정의로운 에너지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핵발전 중심의 정책을 표방하는 인접 세 나라에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풀어가야 할지를 잘 보여준다. 단기적인 해결책뿐만 아니라 후세까지 평화롭고 정의로운 에너지를 사용 가능하도록 에너지 정책을 전환해 가는 일. 그것이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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